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습니다. 시집 입니다. 주로 소설을 읽는편인데 시집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거든요.
시를 잘 모르는 저도 '안도현' 이라는 시인은 들어본 듯하여 골랐습니다.
시집은 소설을 읽듯이 처음부터 읽기는 이상한 것 같아서 목차를 보고 제목을 먼저 살펴봤습니다. 그렇게 고른 제목이 '어느 빈집' 입니다.
어느 빈집
드러눕고 싶어서 나무는
마루가 되었고,
잡히고 싶어서 강철은
문고리가 되었고,
날아가고 싶어서 서까래는
추녀가 되었겠지
(추녀는 아마 새가 되고 싶었는지도)
치켜올리고 싶은 게 있어서 아궁이는
굴뚝이 되었을 테고,
나뒹굴고 싶어서 주전자는
찌그러졌을 테지
빈집이란 말 듣기 싫어서
떠나지 못하고
빈집아,
여태 남아 있는 거니?
안도현
언젠가는 시골의 빈집을 예쁘게 고쳐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중이라 빈집이라는 제목에 눈길이 갔습니다.
날아가고 싶어서 서까래는 추녀가 되었다는 부분은 잘 공감이 가지는 않네요. 역시 시는 어려워 하다가
나뒹굴고 싶어서 주전자는 찌그러졌다는 구절에서 웃음이 납니다.
비슷한 느낌으로 '굴뚝' 이라는 시의 한 구절입니다.
저 굴뚝은 사실 무너지기 위해
가까스로 서 있다.
삶에 그을린 병든 사내들이
쿵, 하고 바닥에 누워
이 세상의 뒤쪽에서 술상 차리듯이
안도현 '굴뚝' 중에서
찌그러진 주전자에서는 떼쓰는 어린애 같은 모습이 연상되었는데,
무너지고 싶은 굴뚝에서는 삶에 지친 아저씨의 애환이 느껴졌습니다.
찌그러진 주전자도, 무너지고 싶은 굴뚝도 세상에 대한 미련 다 떨쳐버리고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한 여름 7월의 열기로 외출이 부담스러워지는 날 입니다.
냉방 잘 되는 실내에서 세상 근심 다 잊고 찌그러진 주전자 처럼 뒹굴었으면 하는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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